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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뒷이야기/여행을 다녀와서

강원도 고성

by 가을목련 2010. 3. 7.

 

어제 저녘에 용인에서 친구들과의 모임을 한뒤 찜질방에서 한숨자고

새벽2시30분에 찜질방에서 나와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원도 고성으로 향했다...

가다가 대관령구간을 지나는데 갑자기 눈이내리기시작하면서,,,

길도 길이지만 마음속으로는 일출을 못볼까봐 가는내내 걱정이었다.

다행히 강릉으로 접어들자 눈은 그치고 밤하늘에 간간히 보이는 별들이 보여 마음을 놓았다.

 

먼저 도착한곳은 일출을 보기위해 공현진항의 옵바위

 

역시 오늘도 구름때문에 수면에서 떠오르는 해는,,,,,

 

옵바위

 

 양식장,,,,무슨양식장인지는 잘 ,,,,,

 

 공현진항

 

공현진항을 나와서 화진포로 가기위해 가진 , 거진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가보기로 했다.

 가진항

 

  가진항근처 해변

 

가진항에서 거진항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의 해안경치 정말로 뭐라 말할수없을만큼 아름다웠다.

그냥 끝내준다~~!

단지 조금 아쉬운건 군사분계선과 가까이 있어서인지 도로옆해안으로는 철조망과 울타리가 쳐져있어서

그경치를 사진에 담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많았다. 

거진항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

 

거진항을 지나 7번국도를 10분정도 달리자 "가을동화"의 촬영지 "화진포해수욕장이 눈에 들어왔다.

화진포해수욕장은 말그대로 명사십리라는 말이 어울리게 모래사장이 넓고 길게 뻗어 있어

연인들의 데이트장소로는 안성맞춤이었다.

 

 화진포해수욕장의 백사장-가을동화의 엔딩장면을 촬영했던 곳

 

  금구도-현재 광개토대왕의 릉이라는 자료가 발견되면서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받고있는 거북이모양의 섬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한국전 이전에는 북한 군간부들의 휴양지였고

                                                                                1948년까지 김일성과 그의 가족 들의 하계

                                                                휴양지로 이용했다 한국전이전에는 고성은 북한땅이었다.

 김정일이 6살때 앉아서 사진을 찍었던 계단

 

이 기붕氏 별장-자유당시절 이승만대통령의 독재정권의 중심에 있던 핵심인물.

 

화진포 호수 - 멀리 눈덮힌 설악산(고성팔경의 5경)

 

  멀리 이승만 초대대통령의 별장이 보인다.

 

이제 화진포를 뒤로 하고 고성의 1경인 건봉사로 향했다.

건봉사(乾鳳寺)는 금강산 줄기가 시작되는 건봉산 감로봉의 동남쪽 자락에 있어 흔히 '금강산 건봉사'라 부른다. 이 지역은 휴전선 인근이라 대한민국영역 중 최북단 지역에 위치한 셈이다.

신라 법흥왕 7년인 520년아도가 절을 짓고 원각사(圓覺寺)라 부른 것이 시초라고 전해지나, 이 지역은 당시 고구려의 영토였기 때문에 삼국 시대에 건립된 대부분의 사찰에 얽힌 창건 설화처럼 전설로 생각되고 있다.

통일신라 시대부터 중건되고 불교 행사가 열린 기록이 있으며, 고려 초기에 고려 태조의 스승인 도선이 왕명으로 중수하고 원각사를 중수하고 절의 서쪽에 봉황 모양의 돌이 있다하여 서봉사(西鳳寺)라 불렀다. 고려 말기 공민왕 때인 1358년나옹이 중창하고 건봉사로 개칭하였다.

조선 세조 때는 원당으로 지정되고 세조가 직접 행차하여 어실각을 건립하도록 한 뒤, 조선 시대 내내 왕실의

원당으로 계속 꾸준한 관심과 지원을 받았다. 신라 때 자장율사당나라에서 가져온 석가모니의 치아 사리는

본래 통도사에 있다가 임진왜란 중 강탈당한 바있었다. 이를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돌려받아 건봉사에봉안하였다.

한국 4대 사찰 중 하나로 꼽힐 만큼 큰 절이었으며 일제 강점기에도 북부 강원도 지역을 대표하는 31본산의

하나로 신흥사백담사, 낙산사 등을 관할했으나, 한국 전쟁으로 전소되면서 조계종에서는 제3교구 본사 신흥사의 말사로 편성되어 있다. 당시 폭격으로 수백 칸에 이르던 전각이 모두 타버려 폐허가 되었고, 지금은 현대에

새로 지은 건물만 단촐하게 서 있다. 민간인출입통제구역에 포함된 위치 때문에 한국 전쟁 이후 오랫동안 민간인은 석가탄신일 하루만 특별히 드나들 수 있었다. 1989년에야 전면 출입이 허용되었다.

건봉사는 통일신라 때 1만일 동안 나무아미타불을 입으로 외워 극락에 오른다는 만일염불회를 개최한 이래

염불승을 많이 배출하였고, 한국의 대표적인 염불도량으로서 전통을 이어왔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머문

곳이라 호국불교의 본산으로도 불린다.

조선 시대에 건립된 무지개다리인 능파교는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일제 강점기의 팔작지붕 사문인 불이문(不二門)은 한국 전쟁 때 이 절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강원도 문화재자료이다.

 

 

 

 

 

송지호 - 죽왕면의 오호리·인정리·오봉리에 걸쳐있는 석호.(고성팔경의 4경)

호수둘레 6.5㎞이며, 1977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약 1,500년 전에는 송지호 자리가 어느 구두쇠 영감의 문전옥답(門前沃畓)이었는데,

어느날 노승이 시주를 청했으나 응하지 않자 화가 난 노승이 토지 중앙부에 쇠로 된 절구를 던지고 사라졌으며, 이 절구에서 물이 솟아 송지호가 되었다고 한다.

맑은 호수와 주위의 울창한 해송림이 어울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바다와 연결되어 있어 도미·전어 같은 바닷물고기와 잉어 같은 민물고기가 함께 서식하며, 낚시터로 유명하다.

백조(천연기념물 제201호)의 도래지이기도 하다.

 

 

 

송지호 해수욕장

 

천학정-고성팔경중에 3경

일출이 고성해안중에서는 제일 아름답고 거울속에 정자가있다하여 "천학정"이라한다.
 

 

청간정 - 고성팔경중에 제2경

청간천 하구 언덕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정자로 관동팔경의 하나이다.
처음 지은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중종 15년(1520)에 군수 최청이 고쳐 세웠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생각된다. 고종 21년(1884) 갑신정변 때 불타 없어졌다가,

1928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의 누각형식 정자이다.

추녀 밑에 걸린 ‘청간정(淸澗亭)’ 현판은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쓴 것이다.

특히 해와 달이 솟을 때의 정경은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서 희귀한 경치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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